[원고 6] 대충
앞에서 나왔던 “대출은 제대로 알아본 후에 결정해야해”
You need to shop around before taking out a loan Do your homework before signing up for a loan. You might want to think again before taking out a loan.
개별 단어들만 보면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충’ 해석도 된다. 그렇다, ‘대충’ 해석이다. “별거 아니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 문장들이다.
자,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자.
a. 대충 해석이 아니라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정말 알고 있는지
b. 저 문장이 필요한 순간에 바로 입에서 나올 수 있는지
두 가지 모두 확실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상당한 실력이다. 그렇다, 상당한 실력이다.
‘대충’ 해석이 어떤 건지 같이 보자.
You need to shop around before taking out a loan.
- 당신은 대출을 take out 하기 전에 shop around 할 필요 있다
Do your homework before signing up for a loan.
- 대출을 위한 sign up을 하기 전에 당신의 숙제를 해라
You might want to think again before taking out a loan.
- 당신은 대출을 take out 하기 전에 다시 생각하기를 원할 수도있다
참 거슬리는 해석이다. shop around 나 take out은 뜻을 모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시 생각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당신의 숙제를 해라” – 이 부분은 분명 한국어인데 쉽게 이해가 안 된다. 대출받는데 숙제는 왜??
해석을 이렇게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우리의 영어 시험 번역이 이런 식이다.
How do you do? –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렇게 이해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시험은 대충 이해해도 풀 수 있지만, 실제 대화는 대충 이해하면서 할 수는 없다. 대충 이해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앞 문장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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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 to = sh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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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shop around – ‘물건 살 때 발품 팔다’가 일반적인 의미. 온라인 쇼핑의 필수인 ‘가격 비교’를 이렇게 적어도 된다. 위 문장에서는 대출 받기 전에 여러 곳에 가서 조건을 비교해보라는 뜻. (지금 around는 ‘주변 둘레’가 아닌 ‘여기저기’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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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ake out – ‘커피 테이크아웃’의 그 take out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뜻은 ‘밖으로 꺼내다’인 take out 은 보험 가입이나 대출 받을 때 흔히 나온다 (to take out a loan / insu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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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o your homework – 지금은 사전 준비 혹은 조사를 제대로 한다는 뜻이다. 문장에서는 대출 신청 전에 제대로 여러 가지 알아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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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want to think – ‘생각하고 싶다’ 외에 무슨 뜻이 있을까 의아해 하겠지만, want to do 에는 의외로 should의 뜻이 있다 (You don’t want to do that = You shouldn’t do that) 지금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정도의 의미.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shop, around, take, out, do, homework, want, think – 시험 지식영어에서는 아주 우습게 보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우습게 보이는 이 기본단어들이 사실은 정말 어려운 단어이다. 원어민이 우리보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할 때는 ubiquitous, carcinogen, deterioration 같은 무지 어려운 단어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어려운 단어는 원어민이 더 모를 수 있다. 그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는 기본단어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단어’ – 언어영어의 핵심이다.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는 실제 실력에 도움이 별로 안된다. (‘전혀’는 아니고 ‘별로’)
“아니 도대체 시험 영어와 실전 영어가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같은 문법에 같은 영어 단어인데왜 도움이 안 된다는 거지?”
영어는 같을 지 모르지만 학습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험 영어의 속성은 ‘대충’이다. 시험은 답을 맞추는 게 목적이지 영어 실력을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대충 해석으로 만족하기에 문제만 풀고 만다. 문제 풀고 나서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지문 중에 이해 못한 부분을 나중에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shop around, take out, do your homework, might want to think 이런 표현을 사전 찾으며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대충 이해한 상태에서도 답만 맞으면 기분 좋다. 그걸로 끝이다. 제대로 이해 못하고 맞아서 창피하니 틀린 걸로 수정해 달라고 양심선언(?) 하는 사람 없다. 맞고 틀리고 상관 없이 문제만 풀면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것은 답이 맞았는 지 여부일 뿐이다.
이래서는 영어 실력이 늘기 힘들다.
대충 해석 vs. 제대로 이해 –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정도가 아니라 지구와 태양 정도로 멀다. 대충 해석해서 시험문제는 맞을 수 있지만, 실전에서 대충 이해 밖에 못하는 사람은 문맹자와 다를 바 없다.
조금 전에 말한 ‘제대로 이해’ 부분은 input 과 관련 있다. 이제는 output,즉 저 문장들이 필요한 순간에 바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지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세상 모든 것이 ‘들어간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있다.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결과물이 나올 수는 없다. 언어역시 마찬가지. 이 말을 우아하게 다시 한 번 적어보면 – 언어의모든 output(말하기&쓰기)은 input(읽기&듣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언어는 ‘창작’이 아닌 ‘모방’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말은 주변에서 접한 다른 이의 언어를 모방해서 만들어낸 결과이다. 즉, input(읽기&듣기)이 기본인 거다. 그렇다. 간단하다. output을 잘 하려면 input이 잘 돼야 한다.
그러니 앞에서 살펴본 대충 해석 식의 input 실력으론output이 결코 될 수 없다.
You need to shop around before taking out a loan.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하는 사람 입에서 이런 문장(혹은 비슷한 문장)이 나올 리 없다.그렇게 오래 영어를 해왔지만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글 한 문장도 제대로 적을 수없는 근본 이유가 바로 이것, input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한두 번 쓱 보고 대충 이해한 다음 보기 중에 답을 골라내야 하는 시험영어가 낳은 결과이다.
말하기(회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말한다 –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없어서 잘 안 늘어. 미국이라도 가야하나? 그러긴 힘드니회화학원이나 전화영어 할까?”
아니다. 사용할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사용할 것이 머릿속에 부족하다. 그 상태에서는 사용할 기회가 생겨도영어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도 못한 상태로 머릿속에 들어간 input이 어떻게 제대로 나올 수 있을까? 무슨 말인 지도 모르는 말을 밖으로 내뱉는다?? 불가능하다.
할 말이나 쓸 수 있는 표현이 많은데 사용할 기회가 부족해서 영어가 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나 쓸 수 있는 표현이 우리에게 없다고 생각하자. 매번 같은 단어, 같은 표현, 같은 문장만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양한 input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input도 없는데 output이 늘길 바라는 도둑놈 심보이다.
대충 해석이 낳은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다.
시험 잘 보기 위한 영어 학습, 즉 지식영어로는 영어 지식이 늘 수는 있다. 하지만 지극히 비실용적인 지식들이다.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단어들, 문법의 예외사항들, 무슨 말인지 출제자도 잘 모르는 복잡한 시험 문제,
이런 식의 학습이었기에 우리 대부분은 ‘생존영어’ 밖에 되지 않는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 못하니 문장보다는 단어만 내뱉는 영어. 그 내뱉는 단어 마저도, 실제 중요한 ‘기본단어’가 아닌 ubiquitous,carcinogen, deterioration 같은 과시 허세용 단어들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고 지식영어의 세계로 들어간 결과이다. 십 년 넘게 영어 배웠는데 다시 중학교 영어로 돌아가는 지경이 됐다.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처음부터 해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제 와서 무슨 영어?” 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지금의 ‘생존영어’ 정도에 만족하고 살면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영어 못 한다고 한국땅에서 못 사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자. 이대로 놓아두면 어른들이 걸었던 영어학습의 길을 그대로 걸을 것이다. 아니, 요즘의 영어학습 시장을 보면 더 심한 가시밭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보다 더 정교해진 사기 영어학습법에 평생 지갑을 열면서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수능 출제유형 바꾼다고,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시험 난이도 바꾼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그 분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 몇 십 년의 영어교육이 낳은 결과를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아무 책임 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그 분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토플 단어 외우고 있는 초등학생이 불쌍하지 않나? 아니, 그 분들은 오히려 기특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댓글 문답
독자: 한국에서 태어나 서른 살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1966년 미국으로 이민가서 영어교육학 박사 학위 취득 후,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otsdam에서 영어 원어민들을 상대로 영어교육학을 가르치는 순수 토종 한국계 이민 1세대인 하광호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 분의 저서에서(여러권의 저서가 있는데 정확히 어떤 책인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영어 독해는 독해가 아니라 영어를 한국어로 단순히 번역하는 작업에 불과했다. 번역을 절대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은 고도의 모국어 실력과 외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운 작업이다. 독해의 목적은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인데, 한국의 독해는 그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만 해왔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화를 강조하는데, 오히려 독해를 더더욱 강화해야 하고, 독해는 언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대충대충 하는 영어-한국어 1:1 대응 번역식 독해→수준 높은 회화??????
오성호: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은 읽기만 제대로 해도 80 퍼센트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성호: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이들의 10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게 가면 갈수록 안타까워요. 며칠 전 특강 끝내고 집에 가는데 지하철 안에 온통 재수생들. 영어 단어장 외우느라 다들 바쁜 모습 ㅜㅜ
오성호: 사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전을 이기는 것은 ’문맥’입니다. 영어를 아주 많이 보면 ’자기 영어’가 생긴다는 말도 합니다. 자신의 영어 경험, 문맥 -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생기려면 다양한 영어를 꾸준히 접하는 게 유일한 길이겠죠. 당연한 얘기를 또 했네요. ㅜㅜ
이 글은 2017.04.25 네이버 카페 「오성호 영어채널」의 ‘영어, 이제는 잘할 때도 됐다’ 게시판에 처음 올라온 글입니다. 카페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