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업

(2012년 1월, 제가 하고 있는 수업에 대해 그냥 마구 적어 본 글입니다^^)

1.posted 120102 at 21:35

별다른 광고도 없고 그렇다고 유명 강사들처럼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 수업을 들으러 온다. (물론 옛날처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보면 대략 두 가지 통로.

책이나 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됐다는 분 & 주변의 소개.

일단 수업을 듣게 되면 두 가지 정도가 예상과 꽤 달랐다고 한다.

사이트에 걸려있는 내 사진 - 참 부드러운 인상이라고 한다. (약간의 뽀샵질 인정함)

게시판에 달린 내 답글 - 참 친절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내 책의 서술 방식 - 설명을 참 자상하게 해준다고 한다.

근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면 “부드러움” “친절” “자상” 이런 거 다 사라진다고.

과연 저 사람이 영어 수업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될 정도의 첫 인상.

지 혼자 진도 막 나가고.

설명하다가 가끔씩 누구한테 내는지도 모를 화를 내며.

상담을 하면 어떨 땐 막 혼내기까지 하고.

기타 등등.

(근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수업 들어보기도 전에 거부감이 팍팍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달랐던 건..

생각보다 수업 내용이 어렵다는 것.

수업 소개를 보면 “영어의 기본”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기본적인 내용이냐는 항의.

읽었던 책 내용은 영어를 한참 놓았던 자신도 어느 정도 다 이해했는데

수업 내용은 조금 과장을 보태 무슨 학회 논문 발표를 듣는 것 같다는 의견.

특히 LC 수업 땐 “좌절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으~ 저 단어 “좌절”)

물론 이런 느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도 있고

전혀 이런 느낌 없이 이른바 “삘”이 통해서 좋다는 분도 있고

“나는 니가 왜 그렇게 수업하는 지 다 알아” 같이 나를 다 이해하는 분도 있다.

찬이 있으면 반이 있고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게 마련이다.

반을 위한, 뒷면을 위한 글을 함 써볼까 한다.

청강 세 시간을 다 못 채우고 가는 분들

수강 신청 후 1~2주 만에 환불하고 수업을 떠나는 분들.

그렇다.

갈 때 가더라도 “요건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식으로 수업 시간 때에도 늘 했던 말이다.

그러니 수업을 오래 들으셨던 분들은 그냥 패스하시길.

여러 차례 들었던 잔소리일 수도 있으니.

2012년 1월.

현재 수강 신청 현황을 보니 예상대로 처음 뵙게 될 분들이 상당수이다.

새로운 만남.

항상 설렘 반 / 두려움 반이다.

그렇게 수업을 오래 했어도 두려움이 있다.

수업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나, 기대를 실망과 좌절로 바꾸게 되면 어쩌나의 두려움이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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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updated 120103 at 15:20

뜻하지 않게 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그 사연을 다 적자면 이제 시작한 2012년 다 걸릴지도 모르니 패스~)

들어가서 느낀 건 내 영어가 참 별로라는 거.

아니, 그래도 드가기 전엔 꽤 한다고 자부했는데 왜 그랬지?

그렇다.

어떤 언어에 능숙하다는 건 단순히 “안다”는 정도론 부족하다는 걸 몰랐다.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 동사에 s/es 붙이는 거 다 안다.

문제는 그게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는 게 아닐지.

단어/표현들.. 어디서 들어보고 접해봐서 좀 생각해보면 뭔지 대충 안다.

하지만 진정한 “내 것”이 아니라면 그 영어 실력은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부가의문문” 기억하시는지?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지 한 번 해보시라.

중학교 때 배운 거라고 우습게 보지 말길.

영어를 잘 하는 이른바 “해외파”와 내 차이는 “쓰느냐”와 “아느냐”의 차이.

그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 그 단어 그 표현을 쓸 줄 알았던 거고

나는 그 단어 그 표현을 그저 아는 정도에 불과했던 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의 상당 부분이 착각이었다는 사실.

통/번역 수업을 들어가면 그게 다 드러난다.

같은 원문인데 나와 영어 잘 하는 친구가 이해한 방식이 다른 경우.

이거 황당하다.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데.. 그나마 이해 정도는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해마저도 우리말에 끼워 맞추기 식의 억지 이해였다는.

통역대학원 재학 중에 나는 내 영어를 다시 뒤집어엎기로 생각한다.

그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제대로 졸업할 거면 이해부터 제대로 하자는 소박한 목표.

그 때부터 내 영어는 다시 내려오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접했고 그 이후에도 꽤 많이 봐서 이제는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단어/표현/문장부터 다시 제대로 보기로 한 거다.

영영사전이란 걸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

영어 잘 하는 친구들의 영어는 보기에도 듣기에도 참 쉽다.

그 쉽게 보이는 게 나는 안 된다.

그럼 그건 쉬운 게 아니다.

무지 어려운 거다.

남들에게 자랑하기에는 photosynthesis 같은 단어가 폼이 나지만

내게 필요한 건 형용사 kind를 언제 어떻게 어떤 느낌으로 쓰느냐이다.

졸업 후에 여러 일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모 자동차회사 브로슈어 한글화 작업이다.

1대1 대응식으로 했던 번역.

이게 번역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긴 내가 읽어봐도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

그냥 영어를 우리말 대응어로 옮겨놓았다는 느낌 밖에 안 들었다.

왜 그랬을까?

원문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다.

번역해본 사람은 알 거다.

무슨 말인지 알고 번역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단어만 옮기고 있는 건지를.

기계가 reliable이라고 할 때 “안정성”이라는 우리말을 생각해내기 위해 고민 꽤 했다.

당시 여러 번역 작업을 통해 내가 아는 단어들은 그 단어의 단편에 불과하다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단어의 뜻을 섣불리 고정시키지 말자는

단어는 문장에 들어가서 다른 단어와 어울리고 문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봐야

비로소 그 단어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도.

통역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그 때까지 내가 접한 영어의 양은

이런 복잡한 단어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도 깨닫는다.

알량하게 접해왔던 영어가 바닥을 드러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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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updated 120103 at 15:20

친구들과 나름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던 영어사이트 “네오퀘스트.”

망했다.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이나 그 때나 우리가 생각하고 주장한 영어는 흔히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소수의 매니아들만 알아주는 그런 주장.

초반에 잠깐 일어났던 돌풍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공감은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딱 거기까지.

왜?

우리는 급하다.

새로운 방법마저도 “효과적”인 방법을 원한다.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그것도 아주 “빨리” 얻느냐가 관심인 거다.

이제 말 배우기 시작한 서너 살 꼬마지만

어떤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당장 몇 달 안에 어른의 유창한 언어 실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언어는 경험이고 삶이다.

살아온 과정 즉, 그 언어를 접해온 과정의 결과물로 나오는 게 언어 아닐까?

살아보지도 접해보지도 않은 그 무언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건지?

그래도 사람들은 “효과적”인 방법을 원한다.

무관심 속에 네오는 사라지고 그 때 나왔던 책 몇 권 정도가 서점 한 구석에 꽂혀있는 정도.

2003년 네오를 닫으면서 네오 사장 최완규씨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시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네오퀘스트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당부 말씀입니다.

영어로 고민하시는 여러분, 끝까지 상식을 믿으셨으면 합니다.

아직도 혹세무민 과장광고가 판을 치고 있고, 상식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이런 과장광고에 마음이 흔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영어는 결국 말입니다. 상당량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말임을 잊은 채 손쉬운 지름길만 찾아보려 애쓰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상식으로 무장하면 영어도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이 또한 상식이지요).

여러분, 상식으로 무장하세요. 저희는 여러분 곁을 떠나지만 저희들이 강조했던 상식만큼은 늘 여러분 곁에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렇다.

영어 가지고 상식에 어긋나는 짓들을 해대는데 우리는 거기에 다 혹해 넘어간다.

내가 대학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비상식이 더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내 네오 친구들.

지금 다 나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수업이지만

난 아마도 비상식의 세계에서 상식을 고수해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게 아닐런지..

그래서인지 아주 상식적인 걸 이해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늘 있나보다.

그렇다.

아주 상식적인 것들을.

수업 후 사람들이 다 가고 텅 빈 강의실을 보며 혼자 가끔 생각한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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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updated 120104 at 16:30

앞으로 세 시간 정도면 2012년 첫 수업.

현재 수강 신청 인원을 보니 이게 1월이 맞나 싶을 정도.

예로부터 1월은 담배 끊는 달, 다이어트 시작하는 달, 영어 책 다시 집어 드는 달이 아니었던가?

저녁반의 주를 이루는 우리 직장인 여러분.

맘 편하게 학원 와서 영어 수업 들을 수 있게 세상이 협조를 하지 않나 보다..

라고

세상 탓, 경제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

내 수업에 오는 사람들 수가 줄어드는 건 점점 변해가는 영어 교육 현실 때문일 수도 있다.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는 현실 속에서 “천천히, 느긋하게”를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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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updated 120104 at 17:08

이 정체 불명의 “RC/LC반”

도대체 무슨 수업이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인가?

지금 수업을 듣고 있는 분들이

밖에서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뭐라 답을 해야 할 지 난감하다는 말을 꽤 한다.

수업을 하고 있는 나도 때론 잘 모르겠다. :)

아니, 알지만 정리가 깔끔하게 안 된다.

일단, 우리 수업을 듣는 분들의 특성.

정말 다양하다.

왜 수업을 듣는 지 잘 이해가 안 되는 현직 통역사도 있고

학교나 학원 영어 샘들도 있고

외국 기업에서 영어 좀 한다는 평을 듣는 분들도 있고

(여기까지만 들으면 기 죽을 분도 있겠지만 제발 그러지 마시라)

토익 500점 대인 분도 있고

영어라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하나도 안 해본 아저씨도 있고

이제 제대를 해서 영어와 처음부터 다시 친해져야 하는 예비군도 있다.

(옛날에 어떤 분이 쓴 구절에 의하면)

“수업 교재를 받아보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구별 밖에 못 하는 분도 있다.

이 두 극단의 예를 든 건 그만큼 다양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당근, 대다수는 이 두 극단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다양하다.

정말 죽이는 구성원이다.

왜냐고?

주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수업을 듣는 분들이기 때문.

수업을 그만 듣는 이유 중에 젤로 황당한 건 – “옆에 영어 잘 하는 사람 때문에 기가 죽어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잘 이해가 안 된다.

기를 죽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주변 사람이 얼마나 하는 지 전혀 신경 안 쓰기 때문이다.

왜 지레 주눅이 드는 건지?

뭐든 배울 때는 잘 하는 사람들 속에 끼어 있어야 한다.

내가 옛날에 요가 배울 때 그래 봐서 잘 안다.

자신보다 잘 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 좋은 기회를 왜?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쳤던 건 샘들 보다는 영어를 얄미우리만치 잘 하던 친구들이었다.

자신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옆에 일부러라도 앉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학교 때 듣던 영어 수업 때문일지도.

그 때는 수업을 같이 듣던 사람들이 모두 경쟁자였다.

그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나는 대학을 가고 그들은 못 간다는 경쟁의 관계.

그러니 나보다 누군가 더 잘 한다는 건 인정하기 싫을 수 밖에 없었다.

수업 난이도는 항상 중간 정도를 설정한다.

아주 잘 하는 분들은 이미 아는 내용일 수도 있고

아주 못 하는 분들은 처음 들어보는 내용일 수도 있다.

잘 하는 분들은 다시 접해보면서 더 다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못 하는 분들은 새로운 걸 배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분들은 내용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을 섞어서 받아들이면 되는 거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자신의 영어 실력을 늘리려고 영어 수업을 듣는 거지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수업에 오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알면 아는 대로, 또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받아들이는 내용이 자신의 영어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내 수업은 “해외파”는 들을 필요 없다.

지금 말하는 해외파는 중/고등학교, 특히 중학교 때 외국에 있던 분들이다.

뒤집어 말하면 (서글픈 말이지만)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육을 받지 않은 분들이다.

이 분들은

kind를 처음 받아들일 때 “친절한”이라는 우리말 대응어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I’m glad to see you. 에서 to 부정사의 부사적 용법이라는 용어를 외우지 않았고

Have you ever been to Seoul? 에서 현재완료의 네 가지 용법 중 어떤 건지 고민 하지 않았고

He kind of likes you. 에서 likes 라고 s를 붙이는 게 자연스럽게 되고

모르는 단어는 있을 수 있어도 문장 형태가 이해 안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오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해드릴 게 없으니.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교육을 받은 분이면 일단 오셔서

자신이 생각하는 영어 수업과 맞는 지 확인은 해볼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실력에 상관없이.

현재 실력에 상관없이??

그렇다.

그 실력이란 게

저 위에 있는 “영어의 신”이 보기에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그닥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실력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안다.)

나는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을 보면 각별한 생각이 든다.

적어도 “느긋하게” 라는 점에서 나와 코드와 맞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긋”이라는 게 바른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몇 안 되는 분들이다.

자신의 현재 실력 때문에 주눅이 든다면 이렇게 다시 생각하자 – “몇 안 되는 분들과 듣는 좋은 기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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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updated 120105 at 08:15

시중엔 참 여러 종류의 영어 교재가 나와있다.

학습법 / 문법 / 단어 / 회화 / 작문 / 청취 / 독해 / 그리고 각종 시험 대비서 등등..

이 중에서 우리의 조급함을 가장 잘 이용해 먹는 종류의 교재는 과연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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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생각해보라고 이렇게 점을 죽 찍어봤는데 참 진부하게 느껴진다.

뭐 다른 참신한 게 없을까.. 생각해보다가 그냥 빨랑 빨랑 적어보기로 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단연코 “단어”이다.

뭐 조금씩 뜯어보면 안 그런 책 찾기가 참 힘들지만

단어 관련 책이나 교재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조급함을 슬슬 자극하며 지갑을 열게 한다.

취직하려면 승진하려면, 아니 뭐가 됐든 인정 받으려면 영어가 꼭 필요한 참 이상한 우리나라.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잘 하면 되지 왜 온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건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능.

전체 중에 정말 뛰어난 일부 전문가만 있으면 되는데

모든 이를 잘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헛된 생각에 전체가 골고루 영어를 못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현실.

뭐..

이런 현실 속에 있으니 모두들 급해질 수 밖에 없다.

급하면 “일단”이라는 단어를 쓰게 돼있다.

이 “일단” 이라는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게 바로 “단어” – 일단 단어부터 하고 보자.

그냥 하는 것도 모자라 일단 단어부터 “외우고 보자”까지 된다.

영어 제대로 하려면 문장을 많이 봐야 한다.

결국 우리 입에서 손에서 나올 영어는 제대로 된 문장이지 단어의 단순한 나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 보려니 귀찮다.

문장 하나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치만 단어는 간단하다.

우리말 대응어 하나만 일단 외우면 그 단어가 내 것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이 생기게 마련.

급하면 가시적인 성과가 (설령 그게 헛된 성과일지언정) 바로 바로 나와주는 방법에 눈이 갈 수 밖에.

그래서일까?

깜박거리는 걸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가 아는 단어가 마구 불어나는 착각을 주는 기기가 인기라고.

나 어렸을 적엔 졸업 선물로 사전을 받곤 했는데 (영한 사전일지라도)

요즘은 이 기기를 많이들 사준다고 한다. (아하!)

영어 좀 제대로 해보면 “kind = 친절한” 이런 건 별로라는 거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말 대응어로 영어 발음을 연상해서 외우는 방식도 있다.

사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거니 역사가 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문맥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영어 단어를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말 대응어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다고 영어가 늘까?

글쎄..

이게 오래 갈 리가 없다.

또 말이 안 되는 건

이렇게 죽어라 외웠는데 왜 영어가 안 느냐고, 영어 못 해먹겠다고

이렇게 죽어라 외웠는데 왜 맨날 까먹냐고, 자긴 머리가 나쁜 거 같다고

이렇게 죽어라 외웠는데 안 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주장하는 거다.

아니다.

영어 단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아니, 영어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내 것이 되고 안 되고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문맥에 따라 계속 변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의 용법을 미리 다 알 필요도 알 수도 없기 때문.

영어를 매일 접하게 되면 단어의 다양한 용법을 접하게 될 텐데

왜 굳이 그걸 미리 한꺼번에 외우려 드냐고요?

복잡한 서울 지하철.

계속 타고 다니다 보면 조금씩 자연스럽게 노선이며 갈아타는 거며 알게 된다.

국기원이라는 역은 없지만 거기 가려면 강남역에 내려서 12번 출구로 나와야 한다.

그런 정보는 노선도에 안 나온다.

계속 타고 다니다 보면 알게 되는 거.

근데 집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마루에 커다란 지하철 노선도 펴놓고 (아니 요즘은 맛폰이 있으니 노선도 보기 더 편해졌지만)

줄 그어가면서 서울 지하철 노선을 한꺼번에 외우려드는 모습.

그러면서 “국기원이라는 역은 왜 없는 거야?” 화를 내고 있는 모습.

문맥 속에서 단어를 조금씩 알아 나가는 게 아니라

몇 백 개씩 단어를 한꺼번에 외워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영어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는 급하다.

영어에 관해선 너무 급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오늘도 단기간에 단어를 빨리 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닌다.

그거 찾아 다닐 시간에 영어 문장 하나라도 자신의 힘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영어는 느는데..

오전 수업 끝나고 단어 얘기 더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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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updated 120105 at 17:50

통역을 해본다.

잘 안 된다. 왜일까?

LC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 즉 이해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

왜 그럴까 생각해보며 원문 대본을 살펴본다.

대본을 눈으로 보고 읽는데 단번에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다.

문장 하나를 놓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니까 그제서야 의미가 파악된다.

이해도 제대로 안 되는 게 통역이 될 리 없다.

대본 이해가 왜 한 번에 안 됐을까 고민 해본다.

기본적인 RC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

단어 어느 정도 알고 문장 이해도 어느 정도 된 거 같은데 왜 RC가 잘 안 될까?

“어느 정도” 알고 “어느 정도” 됐기 때문.

그 어느 정도 아는 것마저도 우리말로 하나씩 옮겨서 우리말 해석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통역을 해보려던 나.

안 되고 안 되기에 원인을 찾아 하나씩 내려와본다.

그럼 가장 밑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놈이 있다.

왜 나한테는 신경 안 쓰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다.

그 놈은 바로 단어다.

우리말 일대일 대응어로 외워놓은 그 단어들.

영어 단어의 결합물인 영어 문장을 이해하면서도

우리말 대응어를 쭉 나열해 우리말 해석으로 한 번 더 바꿔 이해하려는 우리.

그러기에 지난 번 수업 때 했고 책에도 나왔던

His affection didn’t announce itself with strong embraces of dramatic declaration.

이 문장이

“그의 애정은 극적인 선언의 강한 포옹으로 그 자신을 발표하지 않았다”

같은 국적 불명의 영어->우리말 변환 결과물이 탄생하게 된다.

영어가 어려운 게 아니라 풀어놓은 우리말이 더 어려운 이 아이러니.

왜?

단어다.

우리는 단어도 제대로 모른다.

중학교 때 처음 접하면서 외워놓았던 1대1 대응어의 틀에 몇 년, 몇 십 년이고 계속 갇혀있는 우리들.

“Happy는 행복한이 아니다”

철저히 외면당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지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내 책.

제목 후보 중에 “우리는 단어도 모른다”가 있었다.

내 영어를 보면서 내 스스로 내린 결론 중 하나가 그거.

단어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실전의 영역”에서 보면 한낱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아는 것과 쓰는 건 엄연히 다르다고 한 말 기억하시는지?)

단어는 그렇게 쉽게 1대1 대응어로 외우는 게 아니라는 내용의 멋진 책을 써보고 싶다.

근데 오늘 수업 때 했던 PTSD가 생각남.

자라보고 놀라서 그런지 솥뚜껑 볼 생각은 아예 못 한다.

(솥뚜껑이 먼저인지 자라가 먼저인지 이건 평생 헷갈림)

책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책 내용에 관한 자신감도 없고

단어 하나 설명하는데 주절 주절 몇 페이지가 넘어갈 수도 있는데

급하디 급한 사람들이 그걸 다 읽어줄 리도 만무하다.

아니, 그 이전에 또 망설여지는 건

단어는 그렇게 무조건 외우는 게 아니라는 걸 먼저 설득해야 한다는 점.

그러려면 문맥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글을 함께 읽어봐야 한다.

결국은 흔히 말하는 “독해” 책의 영역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이건 완전 산 넘어 산이다.

책으로 이걸 다 할 자신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네오퀘스트 이름을 단 공동 책 작업에서

각 개인 작업으로 바꾸자고 결정하고 처음 내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이 바로 해피책.

사실 그 때 생각은

단어 / 문법 / 학습법 / 독해 등등 각 분야 별로 내 생각을 써보고 싶었다.

근데..

책 세 권을 내보니 생각이 바뀌면서 나름 정리가 되더라는.

근데..

도대체 왜 이렇게 “단어” 얘기를 길게 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수업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고.

그렇다.

글로는 책으로는 너무나 벅찬 작업이기에 말로 수업으로 하고 있는 거다.

굳이 사전 설득이 필요하지 않은 나와 코드가 맞는 분들과 함께

영어 글을 같이 읽어 가면서 처음부터 어긋나있는 영어 단어의 단추를 다시 끼워보기 위함이다.

이름은 RC/LC 반.

그러나 결국 내가 사람들과 같이 하고픈 건 영어 단어 얘기이다.

그러니 LC 안 된다고 집에 가지 마시라.

LC가 되려면 영어 이해가 돼야 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선 단어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기에 하고 있는 수업이니.

아침 수업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요즘은 분간하기가 꽤 힘들어서..) 분들이 꽤 왔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살아서인지

영어에 관한 조급증도 우리 때보다 더 심한 요즘 학생들.

요즘 내 수업에서 학생들 보기가 참 힘들다.

덕분에 비공식 전국 최고령 학원 수강생 모임인 내 수업. :)

아직도 학교 영어 / 시험 영어에 익숙해있는 이 학생들이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내 수업을 얼마나 참고 쫓아와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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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updated120107 at 12:25

자, 이제 수업이 “어렵다”는 거에 대해 말을 할 차례.

어렵다는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따라서 내가 아무리

“이건 어려운 게 아니다. 기본적인 건데 모르는 거다”

“스스로 영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안 해봤기 때문에 느끼는 부담에 불과한 거다”

라고 아무리 얘기해봐야 자신의 느낌이 어렵다면 그건 어려운 거다.

특히나 시험 점수라는 “객관적” 수치로 수업의 효과를 평가할 수 없는 내 수업 같은 경우는

수업의 난이도나 효과에 대한 느낌이 100퍼센트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어려운 거 같고 재미도 없다는 주관적 판단을

점수라는 객관적 판단이 박살내버릴 수 있는 다른 수업에 비하면

내 수업은 절대적으로 수업 듣는 분들의 느낌이 좌우할 수 밖에 없다.

상담을 통해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내 얘기를 들을 땐 아무리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해도

돌아서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만둘래” 가버리는 경우를 참 많이 겪어봐서 하는 말이다.

나도 안다.

어려운 걸 듣는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자기 돈을 내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수업 들어갔는데

아는 내용보다 모르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면 의욕은 떨어진다.

안다고 확신하고 있던 것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짜증난다.

수업 들었지만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아있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가면서 편하게 외울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해서 주는 것도 아니다.

수업 몇 번 들었지만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고

이렇게 해서 언제 자기 영어가 달라질 수 있을까 고민해보면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자, 천천히 함 생각해보자.

어렵다는 게 뭘까?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는 어렵다고 하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넘 잔인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렵다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난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참 배우고 싶다.

근데 사실 몇 년 째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제대로 안 하면서 사놓은 교재 1장만 몇 번씩 보고 있으니까.

그런 내가 “일본어는 어려워”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영어를 꽤 오래 했다고 생각한다.

그거 착각이라고 책에서 말했었다.

오래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되면 어려운 거지만

그게 아니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게 많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모른다는 말이 기분 나쁘면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쪽으로 바꿀 수도 있다.

지금 이게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영어에 “어렵다”는 단어를 습관적으로 붙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깐만이라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렵다 or 모르겠다” 이건 잠시 접고..)

중고등학교 때 받았던 영어 수업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도 무지 무지.

학교 때 한 영어 수업의 목적은

“영어를 제대로 하는” 쪽 보다는 “영어 시험 점수 잘 나오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든 학원이든 어떤 영어 수업에 들어갔는데 모르는 게 많이 나오면, 즉 수업이 어려우면

겁부터 나게 돼있던 거다.

이래서 시험을 볼 수는 있을까..

이번에도 점수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 동안 공부 좀 한 거 같은데 이건 뭐 전혀 효과가 없네..

같은 생각 밖에 안 나는 거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와~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았네..

영어 제대로 하려면 이런 걸 해야겠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하나씩 천천히 해보자..

이러길 기대한다는 건 무리 아닐까?

그렇다, 무리다.

따라서 시험 점수가 목적인 사람이 내 수업을 들으면 내가 뭐라고 설득해도

중도에 포기하고

자신이 아는 게 많이 나오는 그래서 마음이 편한 수업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다.

시험에 찌든 영어를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도 여전히 목표가 그 정도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 수업에 오는 분들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영어를 하는 목적이 적어도 “시험 점수 따위”는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시험 점수가 아닌 정말 자신의 영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견뎌보는 게 어떨지?

자신에게 좀 더 기회를 줘보는 게 어떨지?

물론 그 과정이 힘들겠지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조금 여유를 가져보자.

그 가치 판단에는 내 수업의 질이 절대적 요소라는 거 나도 잘 안다.

따라서 나도 내 수업의 질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런 얘기할 자격도 없는 거고 그냥 조용히 물러나는 게 마땅하다.

영어 얘기만 시작하면 이렇게 말이 많아진다.

이건 고질병.

내 책을 읽은 분들의 한결같은 평가 - “말이 넘 많아요. 평소에도 그러세요?”

아니다, 평소엔 말 거의 안 한다.

그치만 영어만 나오면 말이 많아진다.

내가 생각하기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그 어마어마한 비상식의 장벽을 계속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웬만한 설득으로는 그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내게도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

말이 많아져도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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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updated120109 at 16:30

“어려움”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해보겠다.

책에서 우리의 “영어 나이”라는 말을 했었다.

우리의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현재 영어 실력만 가지고 판단했을 때의 나이.

우리 대부분 미국 아이들 정도의 나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지만 세 살도 아이이고 열 살도 아이일 수 있으니 아이라는 용어가 좀 애매하긴 하다.

사실 열 살 미국 아이의 영어 실력만 돼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

영어할 때 (스스로 영어를 접할 때) 가급적 쉽게 이해되는 걸 보라고 늘 말한다.

영어를 공부/지식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려운 걸 봐야 도움이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우리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모르는 것만 찾기 때문에 정작 확실히 아는 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우리의 영어 나이만 놓고 본다면 우리에게 맞는 건 동화책이다.

TV로 따지면 옛날 “뽀뽀뽀” 같은 프로그램이 우리 영어 실력에 맞는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이 아닐지..

아무리 다른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함이라지만

다 큰 어른이 동화책이나 뽀뽀뽀를 본다는 건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

미국 아이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고 있는 한국 어른이 영어를 해나갈 때 딜레마가 바로 이거.

자기 소개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지만

업무 상 필요 때문에

영어로 써있는 경제 잡지를 봐야 하고

국제회의에 가서 영어로 하는 연설을 들어야 하고

해외에서 온 손님을 영어로 접대해야 하고

국제화 열풍 덕분에 영어 실력 비슷한 우리 나라 사람들끼리 앉아서 영어로 회의를 해야 하는

바로 이런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닐지.

동화책도 제대로 읽기에 벅찬 영문과 학생이지만 현실은 미/영국의 고전 소설을 읽어야 하고

회화책에 나오는 일상적이고 짧은 대화체의 영어 조차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이

거래처의 클레임에 대응하는 내용의 메일을 논리적으로 써서 보내야 하는 것도 우리의 현실.

미국의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수준에 맞게 쉬운 것부터 하나씩 영어를 익혀갈 수 있지만

우리의 어른들은 지적 수준이 이미 높아져있고 또 현실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에

마냥 쉬운 것만 접해갈 수도 없다.

쉽게 말해서

쉬운 것도 계속 접해가면서 확실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만들어야 하고

자신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필요에 맞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도 함께 접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이 영어를 배우는 한국의 어른들에게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

영어가 어렵다고 할 때 이런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건 각자의 의지나 영어에 대한 생각을 떠나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어려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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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updated120111 at 17:18

“아직 수업 들을 실력이 안 되니 다른 데서 더 공부하고 올게요”

중간에 그만 두는 사람이 많이 하는 말이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사람, 잡을 수 없기에 알았다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서 보내지만

마음 속으론 나 혼자 늘 이렇게 생각한다 – “어디서? 어떻게?”

몸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헬스클럽에 온 사람이 아령 몇 번 들어보고

“다른 곳에서 체력을 더 키워서 올게요” 가버린다 – “다른 곳??”

영어의 “기본”적인 내용을 수업한다는 말에 속았다고까지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게 뭔 기본이냐고?

RC는 모르는 단어만 계속 나오고, LC는 전혀 하나도 안 들리는데 이게 뭔 기본이냐고?

사실 그렇게 나오면 그 자리에선 할 말 없다.

그냥 보내드릴 수 밖에 없다.

겨울이 되면 수능 끝낸 아이들이 수업 들으러 꽤 온다.

근데 이 아이들 대부분이 수업을 너무 어려워한다.

“너무”

그리곤 정말 영어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온 지 한 달도 못 돼 그냥 돌아선다.

“어렵다” – 이 얘기를 좀 더 구체적/현실적으로 해보자.

모른다는 건 우릴 불안하게 만드나 보다.

시험이 코 앞인데, 수능이 몇 달 안 남았는데 모르는 게 나오면 기분이 다운될 수 밖에.

영어 실력 빨리 늘려야 하는데 모르는 게 나오면 이래 가지고 언제 하냐는 생각이 들 수 밖에.

그래서인지 나와 이른바 “코드”와 맞지 않는 분들은 쉽게 돌아선다.

근데 정말 수업 내용이 어려운 걸까?

통역대학원 준비하는 수업도 아닌데 굳이 어렵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일반적인 영어 시험들 지문과 비교해서 내 수업 RC 내용이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건지?

글쎄다.

지금까지 영어와는 정말 철저하게 담을 쌓고 지낸 분이라면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말 형태와 어떻게 다른 지 전혀 모르고

영어 문장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면 내 수업을 듣는다는 게 무지 힘들다.

수업 시간엔 그런 부분까지는 설명을 거의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런 분들에겐 늘 “중학교 영어책” 다시 보라는 말을 한다.

그 분들에겐 내 수업이 “필요 이상으로” 어렵다.

자신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지는 청강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웬만큼 영어 다 해본 사람들 아닌가?

(물론 제대로 안 했다는 문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각종 영어 시험 준비하느라 영어 꽤 봤다면 본 편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때 kind 라는 단어가 나오면 “친절” 하지 말고 “배려나 이해” 쪽으로 보자고 말한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아는 단어라고 확신했는데 그걸 자꾸 건드려서 짜증이 나는 건 아닌지.

지금까지 무시해왔던 a/the, 명사 단복수를 따지고 드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이 드는 건 아닌지.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반적인 시험에 나오는 지문과 비교했을 때 우리 RC 지문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의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시험과는 달리 한 글의 내용이 아주 길기 때문에 호흡이 길어지는 어려움은 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자꾸 헤집고 들어가니까

이른바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답답함”은 있다.

근데..

지금까지 대충 대충 해왔기에 그 결과가 현재 우리들의 영어이다.

난 그걸 제대로 하고 싶을 뿐.

다른 수업이라면 금방 끝낼 분량을 두 시간 동안 잡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글 하나를 읽어도 제대로 읽자는 생각 때문에.

RC 수업에 대해선 지금까지 말한 긴 호흡/답답함 외에 “불확실함”이라는 치명적인 불만이 또 있다.

이른바 “번역”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말 번역에 영어 원문을 대조하면서 읽어왔기 때문에

우리말 번역 없이 영어를 읽어가는 게 불안한 거다.

이거 과연 내가 맞게 읽고 있는 건지.. 같은 불안감.

근데..

가능한 우리말 변환 과정을 줄여가는 게 (100퍼센트 없애는 건 힘들겠지만)

영어 실력이 느는 거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우리말 번역을 해서 나눠드리기가 힘들다.

내가 드린 번역에 맞춰서 영어를 이해하는 지금까지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으니.

이제라도 영어는 영어대로 이해하는 습관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수업이다.

단어 설명도 “불확실함”이라는 요소에 한 몫 한다.

뭔가 우리말 대응어 하나 확실히 알려주고 가면 좋은데

빙빙 돌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해대는 거다.

뭔가 하나 확실하게 필기를 하고 싶은데 주절주절 떠들기만 하고 그 “대응어”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수업을 들어도 확실히, 그렇다 “확실히”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는 그 느낌.

그렇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수업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찾아서 정리해준 단어/표현.

나는 별 생각하지 않아도 비교만 하면서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다른 사람이 해준 번역.

이것에 너무 익숙해져 내 스스로 사전을 찾고 영어 문장을 이해하려는 게 귀찮은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려운 게 아니라 귀찮은 게 아닌 지를.

영어 배우겠다는 사람이 사전 한 번 찾아보지 않았다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사전 자체가 없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참고서, 독해책, 문제집 보면 단어들 다 찾아서 정리해놓았으니 지금까지 사전 볼 일이 없었던 거다.

문장 하나를 보더라도 내 스스로 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 문장 보다는 우리말 번역을 더 자세히 봐왔던 게 우리들 영어이다.

과연 뭐가 남을까?

영어를 늘 운전에 비유한다.

면허는 있지만 스스로 차를 몰고 그 복잡한 서울 거리에 나가본 적이 없는 거다.

늘 집에서 지도만 펴놓고 서울 지리를 익히려 했고

거리를 나간다 해도 택시만 타고 다녔던 거다.

그랬던 사람이 운전이 어렵다고, 서울 지리가 어렵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차를 몰고 나가라는 거다.

일주일에 닷새는 혼자 차를 몰고 나가고 이틀은 내가 운전하는 차 옆자리에 타보라는 거다.

내가 운전할 코스는 미리 알려주니까 그 전날 미리 타보고

자신이 하는 운전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는 지 비교해보자는 게 내가 생각하는 RC 수업이다.

RC 수업은 두 시간 내내 내가 떠든다.

그러나 그 두 시간의 수업에서 효과를 보려면 반드시 예습을 해오자.

예습을 해온 사람은 자신의 방식과 내 방식을 비교하면서 수업을 듣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른바 “필기/정리”에 바빠질 수 밖에 없다.

막 바쁘게 필기하다

그냥 정리해서 나눠주면 이렇게 귀찮지 않을 텐데..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수업과 멀어지게 되는 거다.

수업이 끝나고 복습할 때에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예습을 해와서 내 버전과 비교하며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전체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러나 필기에 바빴던 사람이라면

수업 중에도 전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복습할 때에도 정작 중요한 전반적 내용 이해가 아닌 단편적인 단어/표현 학습에 매달리게 된다.

이른바 단어만이라도 외우자는 식이 돼버리는 거다.

근데 외우기 좋게 단어를 정리해서 주지도 않는다.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쉽게 내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겪어온 여러 시행 착오가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정말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려고 내 나름 노력하는 RC 수업.

어려운 건지

아니면

귀찮은 건지.

중간에 수업을 포기하고 가버리는 당사자만이 알 거다.

그러나 정작 RC 수업보다 우리를 “좌절” 시키는 건 LC 수업.

이 다음 글은 LC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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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updated120117 at 14:36

우리를 “좌절”시키는 LC.

끝없는 착각 속에 빠뜨리는 LC.

LC 얘기를 해보자.

내가 대학교 다니던 때, 그 때는 LC라는 개념 조차 생소했다.

영어는 그저 해석 잘 하면, 즉 남이 써놓은 글을 보고 우리말로 해석 잘 하면 되던 때.

그러다가 토익이라는 시험이 들어오면서 이른바 “LC 붐”이 일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국의 이라크 전에 맞춰 24시간 뉴스 채널 CNN이라는 방송국이 팍 뜨면서

흔히 말하는 “CNN 청취”라는 유행어가 탄생했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LC에 재미를 느끼고 학교 랩실에 가서 살기 시작한 게 아마 그 때.

그 때는 영화 대본 하나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청취 학원 다니는 이유가 뉴스 대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오디오 자료도 별로 없었기에 (그나마 외대 랩실은 자료가 꽤 많았다고 하지만)

사실 LC를 하고 싶어도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던 때였다.

토익 교재 하나 사서 거기 나오는 문제를 들어보는 정도.

흥미를 갖고 이것 저것 마구 해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LC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 덕분인지 토익 성적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나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과 달리 그 때는 LC 점수가 토익 성적에 꽤 영향을 미칠 때여서 그랬을 거다.

토익 붐에 편승해 외대에서는 “모의 토익 대회” 같은 행사까지 있었을 정도.

그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주변에서 LC 잘 한다는 소리까지 듣고.

그래서 난 내가 LC를 정말 잘 하는 줄 알았다.

웬만한 건 다 들린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고

내 귀에 안 들리는 건 외국인 발음이 별로이고 오디오 음질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대학교 4학년 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난 외대통역대학원에 들어간다.

들어갈 때까지도 영어 웬만큼 한다는 착각은 계속.

“아~ 착각이었구나”를 깨닫는 데 한 2주일 정도 걸린 거 같다.

왜 2주일이냐고?

어디든지 처음 1주일은 자기 소개하고 환영회하고 정신 없으니까.

본격적인 수업 들어간 2주차부터 이건 뭐 완전 혼돈 속을 걷고 있는 느낌.

내가 어디에 와있는 건지

왜 왔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수업 시간에 나오는 게 영어 맞는 건지

숙제는 매 시간 나오고

발표는 수업 하나 건너씩 있고.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했던 그 때까지의 내 영어는 영어가 아니었던 거다.

가느다란 실 하나에 매달려 언제 끊어질 지 모르는 상태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당사자마저 애처롭게 느끼는 “영어 흉내”에 불과했던 거다.

짐작의 영어.

그렇다.

글 하나를 읽어도 말 하나를 들어도 확신이 아닌 짐작에 기초한 이해.

딱 그 정도의 영어였던 거다.

이게 시험에서는 어느 정도 통한다.

짐작조차 못 한다면 네 개의 보기 중에 찍어야 하지만

짐작이 가능하면 네 개의 보기가 두 개의 보기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

물론 운이 좋으면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나가 될 경우 – 착각하기 딱 좋다.

그 하나가 맞다는 확신이 아닌, 나머지 세 개가 아닌 것 같다는 짐작 속에 나온 답.

하지만 그 답이 맞는 답이라면 자신은 영어를 잘 한다고 착각하기 딱 좋으니까.

근데, 이게 통번역에선 안 통한다.

물론 일반 대화에서도 “짐작”이란 놈은 설 자리가 없다.

서로 짐작에 의한 대화?

니 말은 그런 의미인 거 같아.. 내가 하려는 말은 이런 의미인 거 같아.. - 이게 말이 되나?

타인의 글/말을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하는 통번역에서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내가 대학원 들어가서 처음에 가장 크게 느낀 건

다른 이의 글/말을 옮기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이해조차 제대로 안 된다는 것.

아직도 기억나는 그 수업.

베트남 전 당시 히피에 관한 수업이었다.

외국인 선생님께서 관련 자료라고 하면서 영상을 하나 틀어주셨다.

길거리 히피들 인터뷰.

난 걔들 하는 말이 영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귀론 도저히 영어라는 느낌이 오지 않았기 때문.

근데 다른 친구들 몇 명이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

다른 사람 웃는데 나만 못 웃으면 그거 참 별로.

한 두 번 그러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뭐 계속 그러니 못 참고

“아니, 얘들이 지금 뭐라는 거에요?” 얘기해버렸다.

순간 뒤돌아 나를 쳐다보던 선생님과 앞자리 친구들의 시선.

사실, 그 자리에서 그러기 쉽지 않다.

그냥 이해하는 척 하고 있으면 중간은 가니까.

근데 그 수업 들을 무렵에 (몇 주 지났던 시점)

내 영어를 뜯어고쳐야겠다는 결심을 이미 했던 상태이기에 쪽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모르면 물어보자.. 쪽이었다.

그게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생각.

히피들의 영어라서 안 들리는 줄 알았다.

걔들이 뽕 한 방 맞고 혀가 풀려서 하는 말이기에 발음이 안 좋아서 안 들리는 줄 알았다.

길거리 인터뷰라 그리고 오래된 화면이라 음질이 안 좋아서 안 들리는 줄 알았다.

근데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어가며 해주신 설명을 보는데

결론은 “내가 모르는 말”이었기 때문.

아예 처음 보는 표현도 있었고

중학교 1학년 때 접한 쉬운 단어이지만 내가 모르는 용법이었기 때문에 안 들렸던 거다.

아니 안 들렸던 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 “몰랐던” 거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시간 이후로 영어에 대해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기 때문인 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니까.

설사 머릿속에 지식으로 있다 할 지라도 그 순간에 모르면 모르는 거다.

영어를 학문/지식이 아닌

우리말과 같은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인다면 “아, 그거 아는 건데..” 같은 변명은 별 의미가 없다.

LC.

가만히 생각해보자.

왜 안 들리는 건지를.

아니, 아직도 “아는 건데 안 들리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짐작에 근거한 LC 시험 점수 따윈 잊는 게 좋다.

차라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실력이라면 제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짐작에 의존해왔고 지금도 짐작 정도에 머물러있다면 계속 착각 속에 영어 공부를 해갈 가능성이 크다.

내가 그 수업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한 방 맞았기 때문에.

알량한 실력이 여지없이 깨졌기 때문.

그렇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해온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어에 대한 착각.

일단 그것부터 박살내야 뭐가 돼도 되는 게 아닐까?

누군가 깨줄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깨주길 바랐던 그 때.

돌아보면 그 때는 내 영어에 상당한 의미가 있던 시기였다.

담엔 흔히 말하는 “이해할 때까지 들어라” “계속 듣다보면 이해된다” 얘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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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updated120117 at 14:59

아니, 그 전에 RC 때문에 깨졌던 경험 하나 더.

RC 실력이 깨졌던 건 LC 보다 좀 나중이었다.

LC 보다 상대적으로 RC가 더 쉽게 느껴지기 때문도 있을 거고

LC 보다 금방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LC 보다 상대적으로 RC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진짜 실력과 흉내 실력의 차가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그 수업.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글을 하나씩 나눠주시며 배경 지식과 관련 있으니 읽어보라고 하셨다.

타임지에 나오는 두 페이지짜리 기사로 기억.

받자마자 다들 읽기 시작한다.

다 읽은 친구들은 티가 난다.

몸을 움직이거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거나 자기들끼리 얘기를 한다거나..

다른 친구들이 그러고 있는데 나를 보니 한 2/3 정도 읽은 상태.

이건 뭔가???

나름 빨리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금방 다 읽어버리는 저 실력은 뭐지?

RC가 느린 몇 명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선생님 - “다 봤죠?”

다 안 읽었는데 끝난 척 하고 선생님을 바라보던 나.

나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하게 된다.

뭔가를 읽을 때마다 같은 시간에 나보다 더 많은 양을 읽어버리는 그 친구들.

통역이나 토론 수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알게 된 건

글 빨리 읽는 순서대로 영어 실력이 더 뛰어나고 그러니 당근 통역도 더 잘 한다는 사실.

글을 빨리 이해하는 순서, 바로 그대로였다.

토론 할 때 자연스럽게 영어가 안 나오고

통역할 때 버벅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RC 할 때 시간부터 차이가 났던 거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영어를 평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찬/반의 주장이 있는 글을 주고 주어진 시간 내에 읽어보라고 한 다음 요약을 시키는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처음 든 생각은

“아~ 읽는 것도 제대로 안 되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 읽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 되는 거구나” 쪽으로 바뀐다.

input이 먼저 제대로 돼야 그 다음 뭐가 돼도 된다고 늘 주장하는 이유이다.

남의 글/말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데 무슨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말인지.

내가 이 세상의 없는 표현을 만들어내는 영어의 신이 아닌 이상

내가 하는 말이나 쓰는 글은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는 걸 접하고 그대로 해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엄마/아빠가 하는 말, 유치원 선생님들이 하는 말, TV에서 나오는 말.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우리말을 배우는 데 기초가 됐던 것들이다.

일단 이해가 돼야 뭐가 돼도 되는 게 아닐까?

RC도 그렇게 깨졌다.

LC도 제대로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번역도 제대로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통역도 제대로 안 되고.

토론 들어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제 때 안 나오니 남들 말하는 것만 구경.

그렇게 나의 통역대학원 1학년 1학기는 가고 있었다.

지금도 흔히 하는 말 – 한 번 크게 깨져봐야 제대로 는다.

당시 이리저리 깨져봤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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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updated120125 at 16:23

어젯밤 집에 오는데 갑자기 눈이 마구 내리기 시작.

안 쌓일 거 같던 눈이 도로에 쌓이기 시작하면서 차들이 기어가기 시작한다.

이럴 땐 앞에 가는 차 타이어 자국 따라가는 게 젤로 안전하다.

그냥 천천히.

천천히.

일렬로 천천히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듯 밟는 차들이

텅 비어있는 1차선 & 2차선에 가끔씩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을 거다.

눈길 운전 조심해야 한다는 거.

하지만 아직 겪어보지는 않은 거다.

눈길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눈길 사고가 얼마나 순식간에 발생하는 지를.

내 차를 사기 전이니까 아마 1993년쯤.

당시 알바로 일하고 있던 학원 샘들과 차를 끌고 회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게 된 나.

눈이 마구 왔지만 어린 나이의 객기랄까.

그닥 별 신경 안 쓰고 쿠울하게 평상 시 대로 운전.

내리막길.

급브레이크도 아니고 살짝 밟았을 뿐인데 차는 180도 돌아 반대편 차선에 서있는 거다.

급정거/급출발 – 말로만 들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순간 많이 무서웠다.

운전대 넘기고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왔다.

그러다가 네오퀘스트 일산 사무실 때니까 1999년 정도.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는데 눈이 장난 아니게 오는 거다.

어차피 오피스텔이었으니까 그냥 사무실에서 자도 되는데

순간 “이 때 아니면 언제 눈길 운전을 제대로 해보겠냐”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새벽에 차를 끌고 일산에서 서울 집으로 향했다.

눈길 2단 출발.

급출발/급정거 금지.

엔진 브레이크.

차가 약간 돌 때 대처 방식.

그 때까지 막연히 알고만 있던 걸 차 없는 새벽 눈길 도로에서 실습해봤다.

평상 시 4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세 시간 걸려 집에 도착했다.

미아리 고개 왔을 때가 압권.

올라가지 못하는 차들을 밑에서 보면서 “아~ 올라가기가 저렇게 힘든 거구나” 생각도 해보고

트렁크에서 군용 모포를 꺼내어 올라가는 차들을 일일이 도와주는 한 아저씨를 보며 감동도 받고

체인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늦더라도 평지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것도 알게 됐고.

눈길 운전하면 난 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아직도 기억난다.

눈길 운전은

180도 돌아보기 전에는 막연했다.

눈길에서 돌아보니 무섭다는 거 알았다.

무섭기에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실제 눈길 운전 몇 번 해보니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무서운 건 꽤 줄어들었다.

어제 마구 달리던 1차선의 그 차들.

눈길 운전에 대해 막연한 지식 정도만 갖고 있던 차들이었을 거다.

언젠가는 무섭다는 걸 실제 느낄 날이 올 거다.

눈길 운전이라는 게 실제 어떻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그 무서움에서 그친다면 눈이 올 때마다 운전은 포기해야 한다.

그건 별로.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건데.

출발할 때는 눈이 안 오고 중간쯤 왔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할 수도 있는 건데.

무서운 걸 알았으면 거기에 맞게 겸손한 마음으로 운전을 해보는 거다.

겸손하게.

천천히.

  • 쓰기 전에는 영어랑도 뭔가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 별로.

결론은 (영어랑은 별 상관 없고) 눈길 운전도 해봐야 는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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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updated120125 at 18:59

“이해할 때까지 들어라” “계속 듣다 보면 이해된다”

LC 학습 방법에 있어 거의 진리처럼 해왔던 말들.

찍찍이(소형 카세트 플레이어) 몇 대는 고장 나봐야 한다는 말도 흔히 했었다.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주장 - “아이들이 말 배울 때는 듣기 먼저 한다”

그럼 내가 늘 하는 말.

그건 사방이 영어인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 아이들에게나 해당된다고.

우리는 사방이 한국어인 한국에 살고 있는 다 커버린 한국 어른들이라고.

“몰라도 계속 듣다 보면.. “ - 일단 이게 넘 비현실적이다.

아이라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어른은 “모르는 걸 계속” 들을 수 없다.

아니, 그걸 참고 듣고 있는 사람이 비정상인 거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가도 되는 특권이 아이들에게는 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가며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할 수 있는 특권이 아이들에게는 있다.

그러나 어른들, 특히 말도 안 될 정도의 “영어 맹신”이 가득한 한국 땅의 어른에겐 이런 특권이 없다.

왜 LC 갖고 이런 말들을 해대는 걸까?

LC는 신경도 안 쓰다가 토익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불어 닥친 LC 열풍이 일단 그 이유.

문법은 되는데, 독해는 되는데, LC는 힘들다는 말이 그 때부터 나왔으니까.

문법책 부정사 단원에 나오는 문제의 답은 부정사일 수 밖에 없는데 그 문제 풀고 문법은 된다고

나열식 문법책 몇 번 읽어봤다고 문법은 된다고

남이 해놓은 우리말 해석을 비교해 가면서 영어 문장 한 번 보고 독해는 된다고

지문을 정확히 이해는 못하면서 가능성 있는 두 개 중에 찍은 답이 맞았다고 독해는 된다고 했던 우리들.

그러다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한 번 들으면 그냥 끝나버리는 LC 문제를 접하고는

문법, 독해는 되는데 LC가 안 되는 이유는 평소에 LC를 별로 안 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곤 찍찍이를 사고, 학원 LC 수업을 듣고, 더 좋은 음질을 위해 고급 헤드폰을 산다.

오가며 틈날 때마다 오디오를 들어보며 “LC 훈련”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영어 방송을 하루 종일 틀어놓으면서 LC 훈련이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늘라는 LC는 잘 안는다.

반론이 나올 때가 됐다는 거 나도 안다.

“영어는 원래 빨리 안 느는 거라고 니가 맨날 그러지 않았냐?”

“근데 LC는 잘 안 느는 거 가지고 왜 뭐라고 그러냐?”

누군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거 나도 잘 안 다.

하지만

늘게 돼있는 데 빨리 안 느는 것과

아예 늘 수가 없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모르는 걸 계속 들으면 들릴 거라는 건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내게는 아예 늘 수 없다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언어 학습이라는 “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 넘게 영어를 해왔다고 착각하고 있고

사방에서 들리는 말이라곤 한국어뿐이고

문법, 독해는 되는데 LC는 안 된다고 착각하는 한국의 어른들에게는

“현실적 시각”에서 봤을 땐 아예 늘 수 없게 만드는 방법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좀 센가?

써놓고 보니 약간 그런 느낌도 들지만.. :)

근데 이제 수업 들어갈 시간이..

LC 얘기는 뭐 해도 해도 할 게 많으니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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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updated120131 at 17:40

무조건 듣다 보면 언젠가는 들린다??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의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어느 책인지 기억 안 나는데 “아, 짱나!” 표현을 예로 들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 말을 수 십 번 해준다고 이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단순히 LC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듣기 편하게 “아~~~ 짜~ 아~ 앙~ 나~ 아~“라고 또박또박 말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또박또박 말해준다고 모르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 더 극단적인 예로

“꼭 그렇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이 아니라는 오해는 안 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제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제 입장이 곤란해지니 이런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말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걸 100번, 200번 말해준다고 이 문장을 알아들을까?

우리는 영어를 꽤 오래 했고 그래서 영어를 꽤 많이 안다고 착각한다.

시험 보기 위해 독해를 꽤 오래 해왔기 때문에 문장 해석은 어느 정도 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LC가 안 되면 LC 자체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마치 다 알고 이해하는 표현이고 문장인데, 듣기 훈련이 안 돼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한다는 듯이.

RC보다 LC가 더 어렵게 다가온다면 그 이유는 “실시간” “단 한 번의 기회”라는 차이 때문일 듯.

RC 할 때는, 몰라도 사전 찾아보고 문장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몇 번씩 다시 읽어볼 기회가 있지만

LC는 나올 때 이해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RC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처음부터 읽기 시작해 문장 끝까지 다 갔으면 그걸로 기회는 끝.

그 문장 다시 읽고 그런 거 없는 걸로.

그리고 한 문장 읽기가 끝났으면 그 다음 문장을 또 바로 읽기 시작해야 한다.

쉽게 느껴지는 RC도 이렇게 해보면 정말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영어 뉴스 LC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영자 신문을 우리 신문 읽듯이 읽을 수 있는 RC 능력이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늘 말한다.

그렇다 – 최소한의 조건.

이게 안 되면 LC를 편안하게 할 수 없다.

글로 써있는 것도 눈으로 바로 이해 못하는 데, 말로 나오는 걸 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무조건 듣는다고 이해가 된다??

그렇게 무조건 들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나 같으면 영어 문장 RC를 하나라도 더 할 거다.

영어가 – RC든 LC든 – 안 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접한 영어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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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updated120131 at 17:43

영어 회화가 되고 LC가 된다고 할 때 영어가 대체 어느 정도의 영어를 말하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

즉,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영어란 게 과연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른바 “관광 영어” “회화책 영어” 정도를 말하는 건지?

여행 가서 쇼핑할 때 필요한 영어 정도.

어제 뭘 했는지, 내일 뭘 할 건지 정도를 물어보는 영어 정도.

도달하고 싶은 영어가 이 정도라면 사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흔한 학습법에서 주장하는 대로 문장 몇 개 외우면 되는 거니까.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누군가의 의견이나 발표를 제대로 이해하고 또 거기에 맞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어.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뉘앙스를 알아가며 언어의 맛을 느끼면서 이해하는 영어.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그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영어.

며칠 놀러 갔을 때 필요한 정도가 아닌 영어권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영어.

우리가 하려는 영어는 이 정도의 영어 아닌가?

“회화책 영어” “관광 영어” 정도의 영어라면 LC가 되는 것 같다고 느끼게 할 수는 있다.

이런 문장들은 일단 그 호흡이 짧다.

즉, 문장이 금방 끝난다는 말.

또 문장에 느낌이나 기분, 의견 등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얼마에요? / 10달러입니다.

이런 대화라면 사실 쉽게 이해하고 쉽게 LC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문장 정도면 여러 번 듣다 보면 LC가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영어가 우리들 영어 학습의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회 되면 국제 회의 한 번 가보시라.

아니, 인터넷이 있으니까 http://www.ted.com/ 같은 곳에 가서 호흡이 긴 영어를 한 번 접해보자.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그런 영어를 접해보자.

(자신이 익숙한 주제를 골라야 한다)

“회화책 영어” LC와 뭐가 어떻게 다른 지 느낌이 금방 올 거다.

평상 시 옆자리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는 되는데

회의 들어가서 누군가의 presentation을 듣게 되면 또 다르다.

처음엔 그냥 저냥 쫓아가는 느낌이 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저 사람이 말하는 게 영어는 맞는 건지,

도대체 이 내용이 왜 나오는 건지, 무슨 문맥에서 말하고 있는 건지.. 등등.

흔한 말로 “영어의 숲에서 길을 잃고 혼자 방황” 하면서 LC는 관심 없고

presentation 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시험 때 접했던 LC 따위는 잊자.

단어 몇 개 가지고 문장의 뜻을 짐작하고

몇 개의 보기 중에 답을 골라내면 인정을 받았던 그런 LC는 잊자.

실전의 영역에서 보면 그런 LC는..

글쎄..

실제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오락실에 있는 운전 게임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라고 할까..

실전의 영역에서 생각하면 LC는 단순히 “귀로 들어내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이 글은 2015.06.26 네이버 카페 「오성호 영어채널」의 ‘오성호게시판’ 게시판에 처음 올라온 글입니다. 카페 원문